처음레터가 보내는 여덟번째 편지 2022. 08. 25(목), 혼자가 되는 시간 11:00에 만나는
여덟번째 독립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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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만날 일이 있었다. 다음에 소개할 어느 숙소에 머물렀는데, 그곳은 부지가 넓고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곳이었다. 나도 쉬러 간 곳이었지만, 곳곳에서 마음대로 드러누웠다가, 땅을 팠다가, 잠을 자다가 하는 모습을 보니 부러운 마음이 살짝.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익숙하고, 사람이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 잦은 듯 누가 지나가도 놀라거나 피하지 않더라. 오히려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옆을 지나간다거나, 그 앞에 드러누워 배를 까는 여유를 보여주고 있더랬다. 자연 속에서 편안한 냥생을 즐기는 고양이를 보며 나도 힐링했었다.
그동안의 이야기와 달리, 이번 주의 인사로 '언제나 반가운' 고양이 사진을 가져온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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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갈 때마다, 광합성을 하며 드러누워 있거나 자고 있던 고양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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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 먹는 일을 어른의 상징처럼 생각할 때가 있었다.
10대 시절, 학교와 집을 주로 오가던 내가 바깥에서 밥을 먹을 일은 많지 않았다. 먹더라도 누군가와 같이 먹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그나마도 친구들과 나들이를 갈 때나 가능한 일종의 '이벤트'였다. 당시엔 그게 당연했기에 딱히 불편하거나 굳이 밖에서 혼자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내가 마주한 환경이 그러했고, 그것을 딱히 인식하지는 않은 정도. 다만 혼자 밥을 먹는 행위는 '자유롭게 시간과 돈을 쓸 수 있는, 어른들만의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기억할 만한 '혼밥'의 경험은 고3 시절이다. 다니던 독서실은 새벽 2시에 문을 닫았는데, 그 시간에 문을 나서면 출출함을 참을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잠든 시간 집에서 부스럭거리며 무언가를 먹기도 조심스러웠고, 새벽 2시의 쌀쌀한 공기를 맞으면 괜스레 감성적인 기분이 들어 '뭘 먹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침 가까운 곳엔 24시간 문을 여는 맥도날드가 있었고, 그곳에서 종종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꽤 시간이 걸리는 햄버거를 먹고는 했다.
성인이 되고, '혼밥'할 일이 본격적으로 생겨났다. 신입생 시절에는 부러 혼자 먹는 상황을 피했기에 별로 그럴 상황이 없었지만, 대외활동을 하거나 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끼니때가 되곤 했으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중에 돈도 더 여유가 있고, 시간도 더 자유롭고 구애받지 않으니 혼밥을 막는 건 없었다. 그 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익숙지 않은 동네 어디선가 잘 모르는 가게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나, 어른이 된 것일지도?'하는 기분을 만끽했더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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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혼자 밥 먹을 일이 있을 땐 맥도날드를 찾았다.
그 때 내게 '혼자 맥도날드'는 어른의 상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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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은 일종의 탈출구이기도 했다. 하루-일주일을 수업과 대외활동, 아르바이트로 채우던 내게 '자유로운 시간'은 스케줄 사이사이의 식사 시간뿐이었다. 바쁘게 움직인 것에 '하나의 선물'이라는 의미로 열심히 밥집을 고르고, 천천히 밥을 먹었다. 오롯이 나 홀로 남아 식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나름의 '힐링'이었다. 억지로 말을 할 필요도, 다른 사람을 신경 쓸 필요도, 식사 속도를 맞출 필요도, 끌리지 않는 메뉴를 먹을 필요도 없는, 나만을 위한 시간.
"시간과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배를 채울 때 잠시 동안 그는 제멋대로가 되고 자유로워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고고한 행위,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 활동이라 할 수 있다." -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오프닝
물론 이렇게만 말하니 혼밥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사실 나는 함께 먹는 걸 꽤 선호하는 편이다. 혼자 먹는 걸 꺼리거나 피하지는 않고 때로는 그 순간을 원하기도 하지만, 함께 먹게 되면 마주하는 그 기쁨이 좋다. 특히 독립한 이후에는 혼자 먹는 때가 많아지다 보니, 주말처럼 쉬는 날 전부 혼자 먹을 생각을 하면 약간 외로움을 느낀다(살짝 귀찮기도 하고). 주변의 친구들에게 '저녁이라도 먹겠느냐'라고 메시지를 보내게 되는 이유다. 왁자지껄 떠들면서 밥을 먹고 나면 무언가 채워진 느낌이니까.
혼밥이 베이스가 된 지금 내게 예전처럼 '혼밥을 하다니, 난 이제 어른이야!'라는 의미는 없다. 그저 '오늘은 어떤 음식을 만들어볼까'라는 도전이거나, '오늘은 뭐로 때우지'라는 생활인의 고뇌거나, '영양소 균형을 고려할 때 이쯤에서 00을 먹어야겠군'라는 계산 같은, 익숙함에서 오는 다양한 의미가 됐다. 하지만 독립 이후 이 '혼밥 생활'을 잘 이끌어 오고 있으니, 그 나름대로 '그럭저럭 쓸만한 어른이 됐군'이라고 자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 시절의 내게, '10년이 지나 너는 맥도날드에서 먹는 혼밥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사람이 된다'라고 전하면 뭐라고 할까. '오! 자유로운 사람이 된 거야?'라고 할지, '음... 그런데 함께 먹을 친구는 없는 거야?'라고 할지. 물론 무슨 이야기를 하든 계획하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그게 어른이란 거야'라는 장난어린 한 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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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는 셀 수 없을 만큼 혼밥을 하고, 혼밥 단골 식당도 생긴 어른이 됐다.
무엇보다, 집에서 홀로 밥을 챙겨 먹는 어른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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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et 8. 눈이 반짝, 그로서리 스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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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중에서 '그로서리 스토어'는 꼭 방문하는 편이다. 다양한 식자재나 해외의 과자/간식거리들을 구하기가 쉬울뿐더러, 다양한 식료품이나 잡화를 구경하는 맛이 쏠쏠하기 때문(그래서인지 해외를 가면 마트 구경에 여념이 없다). 한 번 들어가면 계획에도 없던 햄이나 과자 따위를 들고나오게 되지만, 새로운 식료품을 사 들고 가는 그 설레임이 독립생활의 기쁨이랄까. 오늘은 여러 매장 중 3곳을 뽑아 봤다. 다음에 소개할 또 다른 그로서리 스토어 2편을 준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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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 <먼치스 앤 구디스>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33, 1층
벌써 몇 차례 방문하게 된 곳. 구석구석에 가게가 많은 성수에서도 지나가다 쉽게 발견하게 되는 위치에 있다. 우리가 그로서리 스토어에 기대하는 대부분의 물건을 볼 수 있다. 잼, 와인, 음료, 치즈, 파스타 같은 식료품도 많지만, 그릇이나 컵, 치약과 같은 잡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직접 구운 빵도 있는데, 특히 '소금빵'이 유명하다. 갈 때마다 매장의 인테리어나 물건들이 조금씩 바뀌는 재미가 있어 여러 번 방문해도 즐거운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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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청담>
📍서울 강남구 선릉로 158길 14-1
그로서리 스토어 중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닐까 하는 곳. 최근 힙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시몬스가 부산을 거쳐 청담에 매장을 열었다. 이곳은 식료품보다도, 각종 음식을 모티브로 한 재미있는 잡화들을 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붉은 조명은 유럽의 육가공 매장 '샤퀴테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1층은 스토어, 2층에는 버거샵, 3층은 시몬스의 디지털 프로젝트 <Oddly Satisfying Video> 아트 전시가 있다. 1층부터 3층에 이르기까지, 구경거리로 가득한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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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로데오 <메종드구르메>
📍서울 강남구 언주로 174길 27, 1층
이곳은 식료품이라는 주제에 가장 충실한 곳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양옆에 늘어선 냉장고마다 각종 햄과 치즈가 종류별로 가득하고, 와인이나 음료수/과자도 다채롭게 구비되어 있다. 다른 그로서리 스토어나 기타 매장들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다양한 제품들이 많다. 식료품에 관심이 있다면, 꽤 오랜 시간을 머무르게 될 곳. 나도 이곳에서 한참을 구경한 끝에, 여러 제품을 손에 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직접 제조하는 색다른 음료들도 궁금했지만, 지갑을 생각하며 다음으로 기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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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혼자 있는 방에 틀어 놓는 채널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었다. 이 집에 나 홀로 있어서 좋지만, 혼자이고만 싶지는 않아서.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필요해서 틀어놓는 채널로 무한도전이나 과학 채널을 이야기했다. 지난주에 실어 보낸 질문의 답으로 각자가 틀어놓는 채널에 대해서도 알려주어서, 여기에도 함께 공유. 앞으로 집에서 왠지 이곳들을 틀어보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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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hahaha>
제가 애정하는 고양이 채널이에요!! 일단 물소리나 바람 소리 같은 자연 소리가 들려서 편안하고,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도 기분이 좋아져요!! 틀어놓고 소리만 들어도 좋지만 가끔 화면을 봐도 힐링입니다...★
-단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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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
세계 각지의 다른 나라 소식을 전해주는 유튜브 채널이에요! 전반적으로 잔잔하다 보니 틀어놓기 좋은데, 가끔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다른 나라 이야기들도 재밌습니다 ㅎㅎ
-원룸탈출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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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네고막을책임져도될까>
음악 플레이리스트 채널이에요! <에센셜>도 많이 듣는데, 이곳도 많이 들어요. 플레이리스트마다 제목에 딱 맞는 감성의 노래가 있어서 좋지만, 일단 썸네일이 제 취향이에요!
-코코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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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8. 이번 주의 생각 : 사람의 삶이라는 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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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밝은 밤>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당시 사람들의 삶이 그려져 있다. 식민 지배나 전쟁과 같은 시대의 고난도 있었지만, 등장인물들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더해지니 그 이야기가 깊었다. 책을 덮을 때쯤 되어서는 훌쩍거리며 눈물을 조금 흘리고 있었다. 그 삶에 대해 읽는 것만으로도.
<산복빨래방>은 부산 산복도로, 호천마을에 문을 연 곳이다. 부산일보의 기자들이 차린 곳인데, 빨래 비용을 받지 않는다. 대신, 삶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산동네에 살고 계신 주민 대부분은 노인 분들이고, 한국전쟁을 비롯한 각종 굵직한 사건들을 지나온 흔적을 품고 있다. 신발 공장을 다닌 어머니의 이야기, 마을 수리공이었던 아버지의 이야기와 같이 주민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게 목적이라는 프로젝트.
<밝은 밤>을 보고 나서, <산복빨래방>을 본다. 몇 년 전 미디어를 말하고 상상하던 시절, 사람 한 명의 스토리를 통해 사건을 기록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발표하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한 사람이 담고 있는 경험과 기억들이야말로 사람을 울릴 수도, 웃게 할 수도 있는 강력한 소재일 테고, 시대를 담은 그릇일 테니까. 다양한 삶의 흔적들이 지워지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하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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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립일기는 여기까지
처음레터는 독립과 함께 만나게 되는
수많은 처음의 상황과 감정들을 다뤄.
격주 목요일(당분간은 매주!), 혼자가 되는 시간 밤 11시에 메일함을 찾아갈게✨
이번의 편지나 처음레터를 두고,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이든 아래 링크로 편지를 남겨줘.
꼼꼼히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볼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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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우리들의 독립과 처음에 대한 이야기가 알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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