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레터가 보내는 다섯번째 편지 2022. 08. 03.(목), 혼자가 되는 시간 11:00에 만나는
다섯번째 독립일기 |
|
|
토요일 아침. 일어나 화장실에 갔는데 변기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막힌 건 아닌데 레버를 아무리 내려도 딸각거리는 힘없는 소리뿐. 뚜껑(?)을 열어봐도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고, 레버를 내릴 때마다 연결된 줄이 달랑거리고 있다는 사실만 발견했다. 부랴부랴 업체에 전화를 해보니 오후에 방문할 수 있고 부품만 갈면 5만원인데 전체를 갈아야 좋을 거라며 7만원이 들 거라고 한다. 일단은 알겠다고 하고 인터넷을 뒤지며 방법을 찾아보니, 혼자서 교체하기 쉽다는 이야기.
오후가 되기 전에 혼자 해결에 도전해 보고자 나섰더니 집 앞 다이소에는 부품이 없고, 철물점은 열었는지 모르겠고, 다이소를 나오니 우산은 없는데 비는 온다. 할 수 없이 비를 맞으며 집에 돌아가 우산을 꺼내고, 다시 철물점을 향했다. 운 좋게 주말 아침에도 열린 곳 하나를 만났고, 운 좋게 그 부품을 팔고 있었다. 가격은 3천원. 신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물이 과소비되지 않게 뒤쪽 레버를 잠그고 교체를 해봤다. 걱정한 게 우스웠던 만큼 쉬운 일이었다. 이런 일을 잘하지 못하는 나이기에, 스스로 뿌듯함을 적립한 하루였다. 무언가 '독립력'이란 지표가 있다면, +1이 되었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도,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라니까.
|
|
|
<집의 시간들>이라는 다큐-영화를 봤다. 2018년에 개봉한 이 다큐멘터리는 지금은 재개발에 들어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를 담았다. 재개발에 들어가기 전, 사라지게 될 아파트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만들어졌다. 이미 그 기록이 진행되는 시점에도 관심을 품었었지만, 어쩌다 보니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제대로 만나게 됐다.
<집의 시간들>이 말하는 건 집의 의미다. 몇십년간 오래 그 자리를 지킨 건축물이라는 사실에, 그 건축물과 삶을 함께한 이들의 의미를 부여하여 '집'이라고 부르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집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집은 무엇을 품고 있는지, 우리가 매일 가는 그 공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둔촌주공아파트는 사실 마을에 가깝다. 동 하나에 해당할 만큼의 규모의 아파트 단지다 보니, 영상에 등장하는 주민들이 말하는 것처럼 오솔길이나 숲과 같은 녹지도 많고, 군데군데 추억을 새길 만큼 공간이 많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쌓았고, 단순히 몇 평으로 정의되는 공간보다 훨씬 많은 것들-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놀이터나 산책하러 다녔던 숲길, 창밖에 핀 벚꽃,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어중간한 시간에 울리는 절의 종소리-을 모두 모아 '집'으로 여기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
|
|
집이 없어진다는 것은 나에게도 익숙하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20대의 절반 정도를 보낸 동네가 유물을 파기 위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10대 때 다녔던 문구점과 슈퍼가 모두 없어지고, 집으로 꽉 차 있던 길들은 집이 허물어진 공간에 공터만 남아 휑하다. 그만큼 사람은 줄었고, 시장에 있던 가게들은 하나 건너 문을 닫았다. 새로운 가게나 건물은 들어서지 않기에 2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한 마냥 변하지 않는 동네는 유일하게 '집이 사라질 때'만 변한다.
독립하게 된 것도 그 동네에서 할머니와 살던 집도 나라에 넘겨 유물을 파야 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추억이 담긴 집에서 떠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공간 자체가 형체도 찾을 수 없이 사라지는 걸 받아들이는 건 쉬운 듯 쉽지 않았다. 다큐에는 "내가 저 문을 얼마나 드나들었을까"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렇게 '드나든 만큼' 공간에 내가 의미를 쌓았기 때문이겠다. 재건축을 받아들이며 커다란 은행나무, 정전되면 불이 들어오는 전등, 바람이 살랑이는 창문을 잃음에 아쉬워하는 마음이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
|
|
"
독립할 때는 로망이 있었는데, 독립하고 나니 너무 고요하고 낯선 느낌이었어요. 내가 여기에 살고 있나?하는. 그래서 내 느낌이 나는 거를 꺼내고, 갖다 놓고, 붙여놓고, 아닌 거는 숨겨놓으면서 이 공간을 만들어 나갔어요. 나를 닮은 공간이면 좋겠고, 또 그렇게 될 것이고.
"
철거만을 기다리는 예전의 공간을 두고 옆 동네에 새 둥지를 튼 나는 이 집에 새로운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나 역시도 내 느낌이 나는 물건을 가져다 놓고, 사진 따위를 벽에 붙여놓고 있으니까. 그렇게 나의 이 새로운 '집'은 나를 닮아갈 것이다. 그렇게 집에 의미를 자꾸 덧붙이게 될 것이고, 어느샌가 이 집을 다시 떠나는 때가 오면 또다시 아쉬워하겠지. '집의 시간들'이라는 제목은 결국 '내가 집과 함께 쌓아온 시간들'이라는 말과 같겠다. |
|
|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기어다녔고, 걸었고, 뛰기 시작했던 그 집에서 나는 15년이 지나 다시 몇 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집은, 이제는 없다. |
|
|
어느덧 지겨워질 만큼 익숙해진, 코로나 시대에는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만큼 내 집 창 바깥의 풍경에 더 가까워졌다. 그 장면이 꽤 아름답고 그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도 했지만, 가끔은 아예 다른 지구 반대편 어딘가의 모습과 소리가 궁금해져 오기도 했다. 그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사이트 세 개를 가져왔다.
|
|
|
이름 그대로, 다른 곳 어딘가의 창밖을 볼 수 있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또 다른 국가, 도시의 창밖 풍경이 담긴다. 때로는 광활한 자연이 보이기도, 때로는 도심이 보이기도 하는 세계 각지의 창문. |
|
|
지구 곳곳 자연의 소리가 담겨 있다. 한국은 딱 하나의 핀이 있는데, '설악산의 아침'. 세계 곳곳을 뒤지며 장소를 찾고, 소리를 들으며 지구 머나먼 풍경을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선택한 곳 중 하나는 캄차카반도의 'Kuril lake' 소리. |
|
|
오른쪽의 도시를 고르면, 그 도시 속 차 앞좌석 풍경이 보인다. 도로 곳곳을 오가는 차를 따라 그 도시를 여행하는 느낌. 게다가 그 나라 라디오나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서울도 있는데, 익숙한 K-POP이 재생. |
|
|
💬 Question 3. 옆 집이 시끄러울 때 우리는 |
|
|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재밌는 포인트를 발견했다. 내 집에 불쑥 찾아오는 원치 않는 손님, '층간소음' 혹은 '벽간소음'. 이때 우리는 각자 어떻게 행동하는지. 난 이 집에선 어쩌다 들려오는 기침 소리가 전부였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성격상 웬만한 소리가 나더라도 그러려니 하는 편. 운이 좋게도, 대부분 '이웃으로서의 관용'으로 참을 만한 수준이어서 그랬겠지만 말이다.
다만 상황의 정도가 각자 집의 숫자만큼 다르다 보니 포스트잇을 붙인다거나, 직접 문을 두들긴다거나, 신고한다거나 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다. 말하고 싶어도 세상이 흉흉해 마땅한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고민까지. 이에 더해서 몇 시 이후에 세탁기나 청소기 소리가 들리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하는, 이웃과 공유하게 되는 '소리'에 대한 경험들이 많았다. 각자는 어떤 일들이 있었고, 또 어떻게 행동했는지, 자기는 어떤 소리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게 되는지를 체감했던 경험들이 궁금해졌다. 옆집에서 나는, 소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
그 경험을 공유해 준 분들에겐, 작은 기프티콘으로 보답할 예정! 다음 주에는 여럿이서 함께 그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
|
|
💭
Life 5. 이번 주의 생각 : 만드는 재미, 닿는 재미 |
|
|
예전에 쓰레기를 줍는 것과 조깅을 합친 '플로깅'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비슷한 일환으로 '씨낵트럭'이라는 게 생겼다. 씨낵트럭은 바다 쓰레기를 주워 오면, 같은 무게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바다 과자들로 바꿔준다. 7월 말부터 8월 14일까지, 주요 해변 4곳에 나타날 예정이라고. 당장 이번 주말에는 주문진 해변에서 찾을 수 있다.
예전에 글을 열심히 쓰던 시절, 그 동기 중의 하나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거나 하는 '무언가 만들어 내는' 직업을 꿈꾸기도 했었다. 그 과정에서 메시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고민하고, 또 그게 사람들에게 잘 닿았을 때 반응을 보며 생기는 희열을 알게 됐다. 씨낵트럭을 보며 아이디어 자체도 재밌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다니, 기획한 사람들 스스로도 너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내가 직접 뉴스레터를 쓰는 일도 즐겁지만 받는 사람도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고 오늘도 글을 썼다🖋️ |
|
|
지난주 레터, 마지막에 남에게 베푸는 친절 이야기를 하며 벨기에에서 길 잃은 나를 도와준 아저씨 얘기를 했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독자의 이야기. 같은 분이 아니었을까? 살짝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군가의 친절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는 건,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답장을 읽으며, 내 추억에 무언가를 하나 더 얹으며 감정이 깊어진 기분이었다.
처음레터의 답장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언제든 아래 버튼을 눌러 전해주었으면! 답장을 보내줘서 고마워요!🤲 |
|
|
"벨기에에서 도움받은 이야기가 사소하지만 공감됐어요. 버스 환승을 해야 했는데 온통 불어여서 탑승 장소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한 아저씨가 다가와 길을 알려주셨어요. 저는 불어를 아예 못하고 아저씨는 불어밖에 못해서 서로 온갖 비언어적 표현을 동원해 길을 찾았답니다. 벨기에는 참 좋은 곳이에요. 사람들도 친절하고 감자튀김도 맛있는!" |
|
|
오늘의 독립일기는 여기까지
처음레터는 독립과 함께 만나게 되는
수많은 처음의 상황과 감정들을 다뤄.
격주 목요일(당분간은 매주!), 혼자가 되는 시간 밤 11시에 메일함을 찾아갈게✨
이번의 편지나 처음레터를 두고,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이든 아래 링크로 편지를 남겨줘.
꼼꼼히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볼게 🤔 |
|
|
더 많은 우리들의 독립과 처음에 대한 이야기가 알고 싶다면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