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레터가 보내는 세번째 편지 2022. 07. 21(목), 혼자가 되는 시간 11:00에 만나는
세번째 독립일기 |
최근 내게 감명 깊었던 경험 중 하나는, <탑건 : 매버릭>을 본 것. 내게 <탑건 : 매버릭>을 본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과도 같은 일이었다. 영화관에서 어지럼증을 쉽게 느끼는 나는 3D나 4DX류로 영화를 보지 못하고, 어지러움을 유발할 수 있는 액션/스릴러류나 잔인한 영화를 피하며 살아왔다. 이 영화를 보겠다고 영화관에 간 것 자체가 하나의 도전인 셈. 그리고 걱정과 달리 불편한 시점이 찾아오지도 않았고, 남들과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어서 기뻤다. 영화관에서 이런 액션 영화를 본지가 기억도 나지 않는 수준인지라(비행 관련한 걸로는 없기도 하고), '처음' 하는 일로 느껴지는 일을 잘 마무리한 듯해 뿌듯했다. 여전히 내게는 처음인 일이 많고, 그것들을 해결해 나가는 재미가 여전히 남아있다니, 조금 더 삶이 재밌어지는 것만 같은 경험이었다. 아, 물론 영화는 정말 재밌었다. 이렇게 재밌는 영화가 있을까-싶을 만큼. |
독립하고 나서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여럿 있지만, 거의 매일 가까운 빈도로 찾아오는 게 있다면 '이거, 먹어도 될까?'라는 질문이 스스로 맴돌 때다. 과거 할머니와 살 때는, 재료가 남는 일이 많지 않았다. 혼자 먹는 것과 달리 2명이 먹기도 했지만, 하루 2끼를 먹는 나와 달리(그나마도 대부분은 밖에서 먹고 왔다) 할머니는 하루 3끼를 꼬박꼬박 챙겨 드셨기 때문에 재료를 사더라도 2~3일 안에는 대부분 소진을 할 수 있었다. 할머니의 유통기한에 대한 감각은 나보다 조금 너그러웠기에 가끔 내가 '이건 못 먹는다'고 단호하게 버리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먹는다'고 결정되기도 했고.
이제 그 결정을 오롯이 나 혼자 하게 되니, 괜스레 생각이 많아졌다. 할머니가 '괜찮다-'라고 할 때면 나도 '에이 뭐 죽기나 하겠어'란 마음이었는데, 나 홀로 되묻고 있자니 마음 한편에 불안함이 샘솟는달까. 그 불안함의 원천은 결국 '아플 때도 나 혼자인데'라는 인지에서 온다. 먹고 나서 배탈이 났을 때 나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 홀로 끙끙 앓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니 불안함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또 할머니와 있을 땐 '아깝다-'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겠지만, 이곳에선 나 혼자만 '아깝지 않아'라고 생각하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니까.
저번엔 '집에 가면 브로콜리 버섯볶음을 해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부러 버섯도 사둔 상태였고, 레시피도 찾아놨으니까. 막상 집에 가서 브로콜리를 꺼내니 문득 생각이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근데 이 브로콜리, 냉장고에서 몇 주는 되지 않았어?'. 겉보기에는 아래 기둥 부분 말고는 멀쩡해 보였다. 에이, 괜찮아하고 도마에서 브로콜리를 썰고 이미 균에 침식당한 기둥 부분을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넣고 나니 다시 불안해지는 마음. 인터넷으로 브로콜리 유통기한, 브로콜리 상했는지 등등을 검색해 보았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유통기한을 보면 내 브로콜리는 이미 상했을 것이지만, 내 눈에 보이는 아이는 외관도 냄새도 괜찮다. '상한 브로콜리 먹으면'이라는 내용까지 검색해봐도 확실하게 대답해주는 곳은 없다. 사람들은 브로콜리를 두고 상했는지 아닌지 고민하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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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선택권은 내게 달려 있었다. 독립은 그러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고, 그 누구도 결정에 개입하지 않고, 그 누구도 결정에 따른 내 결과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브로콜리를 먹고 아파하지 않더라도, 브로콜리를 먹고 아파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그러니 나는 보다 생각이 많아지고, 겁을 먹게 되고, 걱정하게 되곤 한다. 내가 조금 겁을 내서 비겁해 보이거나 비효율적인 선택을 할지라도, 그 역시 알고 있는 건 나 뿐인걸. 내가 이렇게 뉴스레터에 구구절절 쓰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내가 했던 좋지 않은 선택의 존재조차 모를 테니까. 그러니 마음 한편에선 언제나, '어차피 너밖에 몰라. 그러니 네 마음 가는 대로 해'라고 내게 속삭이고 있다.
문제는 내 마음 가는 대로가 꼭 좋은 선택이 아닐 수는 있다는 것. 나는 겁이 많고, 쉽게 포기하곤 한다. 용기 내서 <탑건 : 매버릭>을 보는 일처럼, 내 마음 가는 대로 하지 않아야 발견할 수 있는 기쁨과 세상도 있다. 내 마음대로만 하면 내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나는 고작 그 자리에서, 내가 편한 자리에서 머무르고 말 테니까. 내가 이 집 안에 갇힌 나로 끝나지 않고, 집 밖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려면 나는 내 마음이 말하지 않는 선택지도 골라야 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 싸운다. '이거, 먹어도 괜찮아?'라고. 어느 날은 먹고 나서 아픈 날도 있을 것이고, 어느 날은 먹어도 괜찮은 날도 있겠지. 그리고 그렇게 나는 성장할 것이다. 독립하며 나는 깨달았다. 이제 모든 걸 나 혼자 해야 하는 만큼, '나 혼자 하는 일'의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고 내 마음대로만 한다면 수준은 그대로일 테니까. 독립, 혼자 서는 일은 단순히 방을 구해서 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홀로 설 수 있는 인간이 된다는 건 일상의 수많은 선택을 잘 해내는 인간이 된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브로콜리는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로 했다. 다음의 나는 재료 관리를 더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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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재료의 운명을 결정하는, 나의 주방. 이곳에서 나는 수많은 재료의 냄새를 맡고,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 세상을 항해했더랬다. 누군가 나타나서 '어, 그건 먹어도 되는데?'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면서. |
어린 시절 나는 열심히 책을 읽었다. 그 이유가 '심심해서'였던 만큼, 심심하지 않게 충분히 바빠진 요새는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책은 괜스레 익숙하고, 반가운 존재인데, 특히 '나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라는 점에서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있는 친구처럼 느끼기 때문일까. 독립하고 나서 시간이 주말이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거나 읽고,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는 했으니까. 그 시간과 여유, 책이 주는 기쁨은 여전하다. 오늘은 이래저래 알게 된 책과 관련된 공간들 몇 곳을 가져왔다. 가본 곳도, 가보지 못하고 이야기만 들은 곳도 섞여 있고 너무 길어질까 봐 담지 못한 곳도 있다. 다음에 또 다룰 수 있기를 기대하며. |
책을 다양하게 만나는 '소리소문'
우리가 독립서점에 바라는 모든 것이 있는 공간. 마치 영화의 스토리처럼, 책으로 인연이 이어진 부부가 만든 책방이고 제주에 있다. 세심한 시선으로 고른 책들, 구매해야 무슨 책인지 알 수 있는 '블라인드 서적', 표지를 다시 그린 명작 등 다채롭게 자리를 채운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들뜨는데, 한쪽에는 필사를 하는 공간도 있다. 오랜만에 필사하며, 짧은 필사가 주는 기쁨을 되새기고 나니 책들과 친해진 기분. |
책을 수선해드립니다, '재영책수선'
책은 자주 읽거나, 세월이 흐르거나, 예상하지 못한 어떤 사유로 바래고 찢어지기 마련인데, 그런 책들을 수선해 주는 '재영책수선'. 많이 읽었거나 의미가 큰 소중한 책일 수록 수선이 필요한 상태일 경우가 많고, 그만큼 책 주인들의 애정과 이야기를 켜켜이 쌓고 보존해온 곳. 문득, 군데군데 헤진 어떤 여행책이 생각이 났다. 울고 싶을 땐 그 책을 읽던 나까지. |
한옥에서 책을, '청운문학도서관'
하나 정도는 도서관을 소개하면 어떨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많이 보낸 곳이기도 하고, 누구나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니까. 그 중에 고른 청운문학도서관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있는 '한옥' 도서관. 한옥 속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 소리,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상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찾아갈 만한 다양한 도서관이 있는게 반갑다.
이미지 출처 : 청운문학도서관 페이스북 페이지 |
💬 Question 2. 만약, 독립 요정이 만 원을 쥐어주고 간다면? |
이번 주는, 생각하고는 괜스레 재밌어서 킥킥 댔던 질문. 독립한 내게, '독립요정'이라는 존재가 나타나서 "잘 쓰렴!"하고 만 원을 쥐여주고 간다면? 그럼 나는 그 만 원을 어디다 써야 할까. 혼자 사는 내 살림에 보탬이 되는 쪽이라면 무엇이든 괜찮다면 말이다. 일단 나라면 마트에 가서 몇 번이나 집었다가 결국엔 내려놓은 칠레산 적포도를 사지 않을까. 포도를 많은 과일 중에서 가장 애정하는 나는 늘 살까 말까 고민하곤 하다 내려놓는 일이 많았는데,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싶었다. 각자, 독립한 자신의 생활에 쓰라며 독립 요정이 만 원을 쥐여주고 간다면 무엇을 살 것인지?
아래 링크에서 각자의 만 원의 이야기를 한 줄로 말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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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3. 이번 주의 생각 : 내 앞에 닥친 기후 이야기 |
2년 전, 영국 기상청이 2050년의 온도가 이럴 것이라고 예보했다고 한다(위 사진). 그런데 그 온도가 30년이나 일찍, 올해 비슷하게 찾아왔다는 이야기. 런던이 40도를 넘기는 것은 평년보다 10~15도나 높은 거라고.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후를 체감하는 요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독립 이후, 더위를 느끼는 일이 오히려 줄었다. 홀로 머무는 작은 방에서 에어컨을 트는 일은 아주 쉽고 간단하니까 가능한 일이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동안만 버텨내면, 그렇게나 여름이 힘들지는 않게 되었다. 다만 여전히 그런 생각은 든다. 내가 쉽게 에어컨을 누르는 만큼, 조금 더 더워지는 것에 한 몫을 하는 건가하는 느낌.
어린 시절 교과서에도 '지구 온난화'라며 이야기를 듣고 자랐는데, 그로부터 거의 15-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정말로 바뀌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바뀔 수 있을까. 앞으로의 기후변화도 과연 지금까지 처럼 '편하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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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립일기는 여기까지
처음레터는 독립과 함께 만나게 되는
수많은 처음의 상황과 감정들을 다뤄.
격주 목요일(당분간은 매주!), 혼자가 되는 시간 밤 11시에 메일함을 찾아갈게✨
이번의 편지나 처음레터를 두고,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이든 아래 링크로 편지를 남겨줘.
꼼꼼히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볼게 🤔 |
더 많은 우리들의 독립과 처음에 대한 이야기가 알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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