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레터가 보내는 두번째 편지 2022. 07. 14(목), 혼자가 되는 시간 11:00에 만나는
두번째 독립일기 |
원래 처음레터는 격주 목요일 발송을 기획했는데, 처음 쌓아둔 이야기가 많다 보니, 당분간은 매주 보낼 예정. 더 자주 볼 생각에 신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레터를 보내👋
이번 주 나와 주변인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건, 천문 망원경 제임스 웹이 보내온 첫 번째 우주 사진(위). 기존의 망원경들보다 훨씬 화질 좋은 모습으로 은하들을 찍은 사진을 보며, 내가 닿을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세상 어딘가의 공간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레터를 쓰기 시작한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은하-지구와 제임스 웹이 담은 수십억 광년 떨어진 은하가 서로의 삶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곳곳의 건물 한 켠을 차지하고 있지만 서로가 어떻게 사는지는 알 수 없는 존재들. 각자의 방과 집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고군분투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우리 역시 각자의 우주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지. 제임스 웹이 보내온 사진을 보며 독립한 우리를 떠올리는 그런 날. |
💌 Ep 2. 이사 첫 날 저녁, 기묘한 맛의 서브웨이 샌드위치 |
독립 첫날은 크게 남들과 다를 것 없었다.라고 하기엔 보통의 독립 첫날이 어떤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아침 일찍부터 전 날 싸둔 짐들을 옮기고, 칫솔이나 이불 따위와 같이 그날 아침에 정리해야 하는 것들을 담았다. 짐이 많지 않고 이사 가는 곳이 가까워 친구들과 함께 했는데, 전 날 책상을 분해하다 발가락을 다친 나는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 꼼짝없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짐을 다 옮기고, 친구들에게 점심으로 중국음식을 사주고, 혼자가 된 나는 열몇 개에 달하는 박스들을 하나씩 열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 행거나 다른 가구들이 배송이 오지 않아 짐을 다 풀자니 애매했고, 뭐부터 해야 맞는지도 모르니 속도도 더뎠다. 원래 쓰던 인터넷을 쓰려고 이전 설치 예약까지 해놨는데 이사 온 건물은 이미 건물 전체가 쓰는 인터넷 회사가 있어서 이중으로 돈을 내게 생긴 걸 알게 됐다. 결국 원래 쓰던 회사에 설치 예약을 취소하고 일시 중지 요청을 했다. 서류까지 보내야 한다고 해서, 안 그래도 관리실 오가랴 주민센터가서 전입신고하랴 편의점가서 쓰레기 봉투와 물 사랴 바쁜 와중이라 이삿날의 오후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물건을 옮기고 배치하는 일도 계획대로 되는 게 없었다. 이사 전 날 배치도를 몇 번이나 바꿔가며 계획을 완성했건만, 정작 집에 와보니 인터넷 선 연결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이슈가 있어 결국 기껏 계획대로 옮겨 둔 TV와 책상의 위치를 다시 바꿔줘야 했다. 다친 발로 책상과 TV를 다시 끙끙대며 옮기는 내 모습이 처량하더라. 내 집에 나 홀로 이사해 본 건 처음이라, 이것저것 서툰 것들 투성이었다. 몇 시간이 걸려서야 대부분의 박스를 해체할 수 있었고, 적당히 사람 사는 집의 꼴을 하게 됐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졌고 배는 고팠지만 제대로 차려 먹거나 하기도 애매하고, 빨리 먹고 남은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 가까운 곳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포장해왔다. 그러고 보니 이삿날에 짜장면을 먹는다는 건 유명한데, 혼자가 되는 저녁엔 뭘 먹어야 하는 거지. 이건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점심에 왁자지껄 사람들과 중국음식을 먹고 나서 혼자가 되면 독립 첫날을 기념하며 무엇을 먹었을까. 어느샌가 TV를 켜고, 뜬금없이 <테니스의 왕자>라는 애니메이션을 유튜브로 틀고 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매트리스를 기다리며 예전 집에서 쓰던 토퍼 위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내가 먹었던 서브웨이 샌드위치 중 가장 기묘한 맛이었다.
저녁을 홀로 먹으며 생각했다. 이제 나는 혼자 사는구나. 밥도 혼자 먹을 것이고, 물건들도 혼자 정리할 것이고, 내가 먹을 음식들도 혼자 결정해서 사 와야 할 것이고, 쓰레기도 나 혼자 버려야 할 것이겠다. 혼자 자고 혼자 일어나야 하겠다. 서브웨이는 독립의 맛이었다. 독립을 하기 전에는 독립 첫날에 마냥 기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물건들이 오지 않아 빈 공간들과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 속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적당히 좋았고, 적당히 슬펐다. 적당히 들떴고, 적당히 지쳤다.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함께 살던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고, 다 괜찮다라고 말하며 살짝 눈물이 났더랬다. 얼른 전화를 끊으며, 그토록 기뻐하고 기대하던 일인데 눈물이 나다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다. 독립을 한 첫날은 꽤 이상했다. 그 이상함이 고스란히 담긴 서브웨이의 맛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
아직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살짝 기울어져 있던 TV는 지금은 균형을 찾아 벽에 걸려 있고, TV 옆에는 전신거울 겸 행거가 들어오고, 토퍼는 침대 틀과 매트리스로 바뀌었지만, 어수선한 이 풍경이 아직 눈에 선하다. 유튜브에서 무엇을 볼까 뒤적이며 온갖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아봤는데, 결국엔 평소에 잘 본 적도 없는 <테니스의 왕자>를 떠올리고는 틀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홀로 당당한 주인공 '에치젠 료마'를 닮고 싶었던 마음일까. |
🍺 Meet 2. 몽글몽글한 영상을 담은 맥주, 숙성 과일향만 남긴 맥주 |
아시아나가 만든 '호피 라거'
'여행과 맥주를 사랑하는 당신을 위하여'란 말과 함께 출시된 아시아나의 호피 라거. 온갖 콜라보가 이어지는 시대니 놀라울 것도 없겠다 싶으면서도, 다시 한번 '우리가 아는 그 아시아나 항공?'이라고 되묻게 되는 제품. |
호가든이 만든 '프룻브루'
세계맥주 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그 호가든이, 알코올을 1% 이하로 줄인 비알콜 음료를 내놨다. 그런데도 '어른의 맛'이라고 하니 뭔가 안 맞는 듯하지만, '청량한 달콤쌉살'이라고 하며 '인생의 맛'이라고 설명하는 걸 보자니 또 그럴듯하다. 라즈베리 향/서양 배 향 2가지로 채우고 탄산을 더한, '진짜 어른을 위한' 여름 탄산음료. |
나는 알코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으레 농담으로 '현대인의 필수 영양소인 니코틴과 알코올, 카페인을 하지 못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실제로 카페인과 알코올은 몸이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멀리한다. 니코틴은 직접 닿은 적은 없지만 결과는 비슷할 것 같다. 어쨌거나 그런 내가 '맥주'나 '술'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다들 믿지 않고는 하는데, 순수한 학술적 관심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으려나.
그러다 보니 마시지 않더라도 술 신제품에는 촉을 세우는 편인데, 각각 다른 컨셉으로 레이더에 걸린 맥주 2개가 있었다. 하나는 아시아나 호피 라거, 하나는 호가든의 프룻브루. 물론 맥주 2개라고 할 수는 없겠다. 프룻비어는 맥주가 아니니까!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알콜을 멀리하는 내게는 더 맘에 드는 지점이었으니, 소개를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리스트업 해둔 여러 아이템들을 미루고 이 둘을 가져오게 된 이유다.
아시아나의 호피 라거는 맥주로 먼저가 아니라 아래 링크한 영상으로 알게 됐다. 이래저래 주변에서 '이 영상, 정말 잘 만들었는데?'라며 하는 걸 봤었는데, 한지원 애니메이션 감독님의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영상미에 감탄을 해버렸다. 일상과 여행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내용이 어찌나 설레던지. 어린 시절 보았던, 익숙한 색동저고리 문양의 '아시아나 디자인'이 담긴 맥주까지 묘하게 과거에 했던 여행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건 덤. 맥주를 홍보하는 데에는 영상미로 압도하는 방법도 있구나란 걸 배운 한 주였다. 이 맥주는 6일부터 CU에서 판매 중.
호가든은 자타 공인 '알쓰'인 내가 선호하는 브랜드였다(맥주 1잔 주량이 그런 말을 하면 모두가 비웃을 거란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아직 호가든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괜시리 '호가든이 진짜 맛있는 맥주지~'라고 떠들고 다녔었는데, 여행으로 벨기에에 가서 호가든을 먹어보고는 깨달았다. 알못이 그냥 떠들었는데도 운 좋게 맞았다!라고. 물론 국내에선 '오가든'이라는 오명이 있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호가든은 괜스레 애정이 가는 브랜드였다. 그 호가든이 논알콜에, 과일향을 가득 담은 탄산음료를 내놓았다니 평소 '애플 사이더'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반길 수밖에. 와디즈에서는 피크닉 세트로 펀딩을 진행 중이니, 관심 있으면 참고해도 좋을 듯.
독립의 로망으로 으레 '퇴근 후 좋아하는 안주와 함께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는 것'이 있을 듯한데, '알쓰'인 나도 맥주는 어렵지만 비알콜 탄산음료 '프룻비어'를 들이키며 아시아나 호피 라거의 영상을 보는 것 정도로 대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
💬 Answer 1. 다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이 뭐야? |
지난주, 첫 번째 질문으로 집에서 가장 최애하는 아이템이 있다면? 이라는 질문을 보냈었지. 그리고 감사하게도 자신의 공간과 아이템을 공유해 준 분들의 이야기를 아래로 소개해 볼게.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의 질문을 던질 예정이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줘! 함께 나누면서 우리의 독립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갈 테니까! 그리고 이야기를 보내준 3분에게는, 독립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약소한 기프티콘을 보냈어 :) |
'개미곰돌이'의 로봇청소기 <롱롱>
처음 방 딸린 집으로 이사 가면서 청소기 돌리는 일이 너무 귀찮고 시간을 많이 쓰게 되더라고요. 고민 끝에 큰마음 먹고 물방개를 닮은 로봇청소기를 들였습니다. 이름도 ‘롱롱’ 이라고 지어주었죠. 처음에는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벽에 부딪치길래 ‘저 비싼 몸에 흠집 하나 나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제 한 몸 불살라서 우리 집을 깨끗하게 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웃음) 퇴근하고 롱롱이가 깨끗이 청소한 집을 보면, 이래서 로봇청소기를 사는구나 싶어요. 독립 템으로 로봇청소기 강추입니다!
|
'파란맛 아이스크림'의 <드림캐쳐>
독립을 하게 되면서, 본가에 있는 내 방과 내 자취방을 크게 구분 짓는 아이템은 사진 속 드림캐쳐 인 거 같아요. 나머지 아이템들은 다 본가에도 있지만, 이 아이템은 제 독립공간에만 있습니다 ㅎㅎ 제가 해외여행 갔다가 정말 충동적으로 사게 되었는데, 요새도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룰 때 제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아이템 중 하나입니다. 멍하니 바라보면 마음을 안정되게 만들어주는 색감(?)이고, 일단 예쁘지 않나요! 제 방의 분위기도 한층 따스하게 해주고, 저의 악몽들도 걷어내주는 저만의 아이템입니다 :) |
'개미 퍼먹어'의 <알파카인형>
내가 너무 좋아하는 알파카 인형! 보자마자 너무 맘에 들어서 무조건 이 인형이 어울리는 인테리어를 꾸며보자! 하고, 이사 왔을 때부터 저 인형을 중심으로 하얀 인테리어를 많이 모았어요 :) 하얗고 알파카 인형의 털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집을 꾸며나가고 싶었는데 어느새 제 집은 약간 창고가 되어가는 기분이지만...(맥시멀리스트의 숙명 흑흑) 그래도 저 알파카 인형을 볼 때만큼은 포근한 기분도 느끼고 제가 유일하게 지키고 있는 저희 집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하하하🤣 |
💫
모두 내게는 없는 아이템인지라, 갖고 싶은 마음이 뿜뿜해지는 이야기들. 밀대 걸레로 방을 청소하고 있자면 이제는 로봇청소기가 생각이 날 것 같고, 역시 불면증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나는 밤이 되면 드림캐쳐를 떠올릴 것만 같네. 꾸밈 아이템이 별로 없이 효율에 충실한(?) 방의 빈 공간을 보면 알파카 인형이 전해주는 포근함이 아쉬워 질지도 모르겠어. |
💭
Life 2. 이번 주의 생각 : 내 삶이 별점으로 매겨진다면 |
'별점 1점짜리' 리뷰, 직접 가서 확인해보니…[남기자의 체헐리즘] |
최근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기사. 별점 1점 리뷰를 받은 식당/카페를 가서 직접 체험해 보는 수기를 담은 내용인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됐다. 단골 떡볶이집의 1점 리뷰를 보고 '리뷰가 틀릴 수 있겠구나' 싶어 시작했다는 체험기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1점을 남길 만한 것이었다지만 직접 돌아보며 마주한 음식들은 그렇지 않았고, 사장님들은 그 음식과 매장에 누구보다 진심으로 대하고 있었다는 후기. 물론 때로는 누구나 '여긴 1점을 줘야겠다' 싶은 곳도 있겠지만, 우리가 보는 수많은 '1점'들이 정말로 그만큼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음이 이어졌다.
혼자 살다 보면 아무래도 배달 앱과 익숙해진다. 나름 요리를 자주 해 먹는다지만, 배달 앱 없이 사는 모습을 상상하긴 쉽지 않다. 배달 앱은 곧 수많은 식당과 카페를 마주하는 일이고, 다시 말해 수많은 리뷰와 마주하는 일이다. 으레 '이 집은 별론가 보네'하고 넘겼던 일들이 떠올랐다. 내가 누군가의 업業에 1점을 매기고 그 평가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그 업을 평가하는 일이 온당한 일인지. 기사가 말하듯 재주문률로 바꾼다고 무조건 해결될 일도, 별점제를 무작정 없앨 수도 없는 일이며 별점 1점짜리 리뷰에게만 '틀렸다'거나 '문제'라고 지적할 수도 없다. 다만 내 행동 하나, 선택 하나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사회에서 1인분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내 선택의 무게를 알고, 책임을 질 줄 아는 것이라면, 리뷰에 대한 태도도 '독립'의 일부가 되려나. '독립'이 방 하나에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설 수 있다는 의미라면, 독립의 길은 머나멀구나. |
오늘의 독립일기는 여기까지
처음레터는 독립과 함께 만나게 되는
수많은 처음의 상황과 감정들을 다뤄.
격주 목요일(당분간은 매주!), 혼자가 되는 시간 밤 11시에 메일함을 찾아갈게✨
이번의 편지나 처음레터를 두고,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이든 아래 링크로 편지를 남겨줘.
꼼꼼히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볼게 🤔 |
더 많은 우리들의 독립과 처음에 대한 이야기가 알고 싶다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