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의 시간이 기억나는 일 이번 주의 처음
매년 받는 건강검진에서, 대장내시경을 진행했다.
처음으로, 식단을 관리하고 쓰디쓴 약을 마시는 일련의 과정들을 겪었다... |
|
|
/오늘의 처음레터 미리보기/
💌 EP. 15
집과의 추억을 쌓는 경험
📮 MEET. 15
'술알못'에게도 즐거운 공간, 바틀샵
💬 Question. 08
집에 놀러온 친구의 행동, 더 싫은 것은?
💡LIFE. 15
이번 주의 생각 : 꾸준히 한다는 것
|
|
|
처음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았다.
2년 전 건강검진에서 위내시경은 받았었는데, 대장내시경은 처음이었다. 나이 앞줄이 3으로 바뀌면서 한 번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이번 건강검진 때 신청했다. 물론 맘이 편치는 않았다. 비위가 약한 나에게 대장내시경 약에 대한 후기들은 무서웠고, 3일 전부터 식단을 조절해야 한다는 점도 괜스레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원체 걱정이 많은 유형의 사람인지라 2주 전부터 계속 신경이 쓰였더랬다.
3일 전부터 먹을 수 있는 건 흰 밥과 죽, 바나나와 두부, 생선, 계란, 식빵과 같은 것들뿐. 빨간색이 들어간 음식도, 채소나 과일류 대부분도, 백미를 제외한 곡물이나 양념에 쓰이는 가루류도, 색깔이 있는 음료도 안되는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금요일 퇴근하며 바리바리 장을 보며 집에 돌아왔다. 이제 이것들만을 가지고 버텨야 한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밖에서는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사실상 없는 데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도 주말을 집에서 보내며 준비할 심산이었다.
보통 식사는 흰 밥에 햄을 먹거나 두부, 생선을 먹었다. 중간중간 계란이나 식빵, 카스테라, 바나나를 간식으로 채웠다. 내시경 전날에는 흰죽만을 먹을 수 있었는데, 김치나 장조림과 같은 반찬의 도움 없이 흰죽만 먹자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나서는 금식을 했고, 밤에는 세 차례에 걸쳐 약을 먹고 물이나 이온 음료를 1L씩 마셨다. 들려온 후기보다는 쉬웠지만, 이래저래 불편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
|
|
3일의 식사를 준비하고 남았던 식품들. 여기에 두부와 바나나, 카스테라와 토레타까지 샀더랬다. |
|
|
대장내시경을 한 당일에 집에 돌아와서도 나름 식단을 조절했다. 바로 일반식을 먹지 않고 죽이나 두유, 바나나와 같은 것들로 하루를 보냈다. 그 과정을 거치는 3일간, 집에서 많은 일을 했다 싶었다. 식단을 계획해 식사하고, 필요한 물건이나 음식들을 사 오고, 때에 맞춰 약을 먹고, 화장실을 몇 번씩 오가고, 배가 불편해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이고, 새벽에 약을 먹기 위해 일어나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그 과정 모두 나와 내 집에서만 이루어진 일이었다.
집과의 추억을 쌓았다고 생각했다. 매일 나는 집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지만, 평소에는 필요에 따른 일만 할 뿐이고, 그나마도 시간이 적다.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약속이 있다며 나가니까. 집에서는 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을 매일 하지만 그 외에 '추억을 쌓는다'라고 할 만한 것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3일간 집의 공간들을 오가며 여러 일들을 겪고 나니 '추억'이라 할 만하다 싶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몇 번 있었다. 이사하고 나서 매일매일 가구를 조립하고 새로 들여온 물건을 놓으며 집을 바꿔나갈 때가 그랬고,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간 집에서 격리할 때가 그랬고, 집 벽을 꾸미기 위해 사진을 인화한 다음 붙이기 위해 실패와 새로운 시도를 거듭할 때가 그랬고, 꽤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음식을 준비하고 요리해서 먹을 때가 그랬고, 지난 주 소개한 것처럼 청을 담글 때가 그랬다. 집에 길게 붙어 있던 시간들. 집에서 생존을 위한 행동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했던 시간들.
학창 시절, 새 학기 때도 아직은 조금 어색한 친구들과 수련회나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부쩍 친해지곤 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과 금세 친근감이 들었던 것도 비슷했다. 기억날 만한 어려운 상황을 함께 보내거나, 함께 붙어 유의미한 오랜 시간을 보내거나 하는 일들. 집과의 관계도 그런가 싶다. 그저 집에 오래 살았다고만 해서 정이 붙거나 하진 않겠지. 여러 감정과 사건들을 함께 보낸 기억을 쌓아 나가면 언젠가 이 집 문을 열고, 또 닫을 때 조금은 색다른 감정이 붙겠지.
이 집을 떠날 때가 오면, 문득 이번 기억을 떠올릴 것 같다. 걱정 가득 안고 대장내시경 약을 마시던 때를, 잠을 이루지 못해 끙끙대며 뒤척이던 그 새벽을, 바리바리 사온 짐을 정리하며 '자 이제 여기서 3일간 함께 하는 거야'라고 되뇌던 마음을. 이렇게 집과 나는 대장내시경을 계기로 하나의 추억을 나눠 가진 셈이다. |
|
|
건강검진을 마치고 나서, 이번 일로 만들어진 집과의 추억에 대해 생각했다 |
|
|
Meet 15.
'술알못'에게도 즐거운 공간, 바틀샵 |
|
|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주량이 워낙 약해 불가능한 것도 있고, 그렇다 보니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술을 입에 대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술을 사고, 보러 가는 건 즐긴다. 그만큼 여러 주류를 판매하는 상점에 방문하기도 하고, 굳이 굳이 찾아서 특정 술을 사기도 한다. 코로나와 함께 집에서 술을 마시는 트렌드가 확산하며 와인을 비롯한 주류들의 소비가 늘었다고 하는데, 그에 따라 '바틀샵'도 인기를 끌고 있더라. 몇 가지 공간을 소개한다. |
|
|
핫 플레이스 바틀샵, <보틀벙커>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240, 1층
잠실 제타플렉스에 위치한 바틀샵으로 작년 12월 론칭과 함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없으면 어디에도 없다'라는 말 그대로, 거대한 규모에 다양한 종류의 와인과 주류가 잘 갖춰져 있다. 전통주나 보드카, 사케, 위스키와 같은 술들은 물론 칵테일 도구나 다양한 안줏거리들도 빠짐없이 채워져 있어 구경할 거리가 쏠쏠하다. 와인의 경우는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도 지역별로 산지를 나누는 등 세세하게 구분하고 있고, 일부 와인들은 50ml 단위로 시음도 가능. 최근에는 창원과 광주에도 문을 열었다. |
|
|
쌤에게 설명 듣는 와인샵, <와인쌤마켓>
📍서울시 성동구 아차산로17길 48,
V1 CENTER 1층 R105호
이름에 들어간 '쌤'이라는 단어가 이곳을 설명한다. 공간이 넓지 않아 취급하는 와인의 종류는 적지만, AI 와인 추천 프로그램 '쌤즈가이드'가 와인을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남다른 곳. 진열장에 놓인 와인들은 옆 디지털 화면에서 맛과 히스토리 등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맛을 6가지 척도로 구분하고, 개인 성향에 따라 추천 정도도 알려준다. 시음도 가능한데, 기기를 통해 마셔보고 싶은 와인을 고르면 된다. 구매한 와인을 매장에서 바로 즐길 수도 있고, 간단한 핑거푸드도 팔고 있으니 참고. |
|
|
제주 여행 중 와인이 당길 때, <오프너마켓>
📍제주시 1100로 3230, 1층
오프너마켓은 제주시 한라수목원 인근에 있다. 차량으로 공항까지 넉넉잡아 20분이면 갈 수 있어, 여행의 시작과 함께 와인을 사기에 적합하다. 다양한 와인과 다양한 주류를 취급하고 있는데, 안주류도 햄, 치즈에 그치지 않고 '그로서리 스토어'에 가깝게 구비되어 있어 식료품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행 중 어디서나 쉽고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WIAG 컵 와인도 눈에 들어오는 아이템. 잔이나 식기류들도 구비하고 있어서, 어느 종목 하나 빠짐없이 갖춰진 제주 와인 편집샵이라 할 만하다. |
|
|
Question 8.
집에 놀러온 친구, 자기 마음대로
침대 올라오는 게 싫다 VS 구석구석 뒤져보는 게 싫다 |
|
|
이번 주는 조금 다른 물음을 가져왔다. 기존이 사연이나 경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엔 독립하고 마주하는 상황을 두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한 질문. 친구가 집에 놀러왔을 때, 허락받지 않고 침대에 올라가는게 싫은지, 말도 없이 구석구석 물건을 뒤져보는게 더 싫은지. 개인적으로는 침대에 올라가는 게 조금 더 싫은데, 사람들 마다 의견이 다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유롭게 아래 버튼으로 의견을 들려주길! |
|
|
Life 15.
이번 주의 생각 : 꾸준히 한다는 것 |
|
|
올해 교보문고가 선정한 '올해의 글씨'에는 82세 김혜남 할머니가 뽑혔다고 한다. 책 속의 문장을 손글씨로 필사한 결과물을 두고 하는 손글씨 대회라고 하는데, 할머니는 20년간 매일 세 시간씩 손글씨를 썼다고. "글을 쓰세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꼭 손글씨를 쓰세요. 같은 곳에 살더라도, 전화를 할 수 있어도, 글은 내 감정에 가장 솔직해지는 수단이에요. (...) 글쓰기는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담는 연습이에요"라는 인터뷰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손글씨를 매일 세 시간씩 쓴다고 하면, 누군가는 '왜 고작 그런 걸 하느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조금 더 생산적인 일에 그 시간을 쓰라고 조언을 할 수도 있고. 할머니가 들인 20년간의 시간의 결과가 상으로 이어져서, 할머니의 손글씨가 디지털 폰트로 나오게 되어서가 아니라 '대단하지 않은 것이라도 꾸준히 하는 일'의 가치를 생각하게 됐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그렇게 해낸다면, 무엇이든 내게는 변화가 찾아오겠지. 뉴스레터도 그런 마음으로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겠다.
사진 / 교보문고
|
|
|
/오늘의 독립일기는 여기까지/
처음레터는 독립과 함께 만나게 되는
수많은 처음의 상황과 감정들을 다뤄.
매주 목요일, 혼자가 되는 시간 밤 11시에 메일함을 찾아갈게✨
이번의 편지나 처음레터를 두고,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이든 아래 링크로 편지를 남겨줘.
꼼꼼히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볼게 🤔
|
|
|
더 많은 우리들의 독립과 처음에 대한 이야기가 알고 싶다면
👋 |
|
|
|